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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/습작

잡념 - 아버지의 잡념

"일을 안 하면 자꾸 잡념이 생겨서 안돼!!"

<아버지, 아들>

7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입동이 지난 요즘에도 항상 과수원에 나가 일을 하신다. 힘든 일을 하신 날엔 기력을 다 소비해 다음 날은 꼼짝없이 집에 누워계신다. 건강이 염려되어 "인자 고마 좀 쉬라"라고 말씀드리면 "농사꾼이 일 안 하믄 뭐하 끼고? 인자 쉰다는 거는 죽는기나 다름없다" 하시며 되려 역정을 내신다. 가슴 한 구석이 쓰라린다.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'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살면서 죽을 고비도 3번이나 넘겼는데 이제 좀 편히 살아라'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그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목 안에서 맴돌다 사라진다.

그리고 허리를 숙이시며 나지막히 말씀하신다. "일을 안하믄 잡념이 자꾸 생기서 안돼...." 순간 큰 바위가 굴러와 내 뒤통수 위에 떨어져 내 머릿속의 골이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. 그 잡념의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는 모르지만 요즘 아버지께서 가끔 말씀하시는 '삶에 대한 이야기'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졌다. 그리고 이제 다시는 아버지의 일에 대해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. 그저 시간 날 때마다 찾아뵙고 일손 거들며 새로운 추억들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, 그게 아버지를 좀 더 편하게 해 드리는 일인 것 같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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